절반의 실패 - 첫째날 자전거

prologue

제 나이 21살. 남자인 저에게는 딱 군대적령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3월에 군대갈 생각으로 해군 지원서를 쓰고, 학교도 휴학하고, 발표시기에 맞춰 알바도 그만뒀습니다만... 군대에 떨어졌습니다. -_-

거기서 부터 시작되는 잉여생활.. 잉여인간으로 있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더군요. 한 한달쯤을 뒹굴고 난 4월의 어느날, 저는 자전거 여행을 생각하게 됩니다.

대강 코스를 알아보니 동해-남해-서해를 도는 건 시간이 많이 걸리더군요. 그렇다고 부산-서울은 3일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 그래서 부산-인천-제주 한바퀴라는 코스로 돌기로 합니다.

코스를 준비했으니 가져 갈 물건들을 정해야죠. 숙박은 찜질방과 같은 시설을 이용하기로 했기에 짐은 간소했습니다. 자전거 여벌의류, 평상복과 잠옷으로 사용할 의류, 자전거 용품들과 쵸코바, 수첩, 자물쇠. 같이 구입한 페니어 가방(짐가방)에 다 쑤셔놓고 다음날 출발하기로 합니다.


2010년 4월 8일

그러나 출발은 실패했습니다. 원인은 페니어(짐받이)와 페니어 가방. 페니어는 양쪽 날개가 좁아 가방과 바퀴의 간섭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했고, 페니어 가방은 중국산 아니랄까봐 무게가 걸리는 지퍼부분이 버티질 못하고 그냥 터져버렸습니다. 이미 대저까지 간 상태였음에도 불구, 하는 수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4월 15일.

모든걸 재정비해서 다시 출발합니다. 전날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왔는데, 다행히도 일어나 보니 하늘이 맑네요. 오늘의 일정은 대구까지. 일반적으로 자전거로 서울-부산을 달리는 길들을 살펴보면 모두 도로사정이나 거리상의 이유로 대구나 대전과 같은 주요 도시들은 전혀 지나지 않지만, 저에게는 부산-인천을 달리면서 대구와 대전을 들리지 않는다는게 용납이 되질 않더군요. 거 왜 노래도 있잖습니까.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 아무튼 오늘은 58번국도를 타고 밀양까지 가서 25번국도로 청도를 거쳐 대구에 들어가는게 목표였습니다.

일단 출발에 앞서 대저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산을 하나 넘거나 빙 둘러가야 해서.. 초반부터 체력소모는 좋지 않다는 판단에서였죠. 7시 10분, 대저역에서 출발합니다.

출발 전 대저역에서 찍은 셀카...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좀 피곤해 보입니다.

여행을 함께 할 나의 자전거.


대저역에서 아직 공사중인 김해 경전철 노선을 따라 58번 국도로 진입. 시간대가 아침이라 그런지 가는 길 중간중간에 보이는 여고생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원기 회복제! 하아하아.., 이게 아니고. 아무튼 출발한지 한시간 만에 시내를 빠져 나옵니다.


밀양까지 가는 길은 정말.. 환상적이더군요. 부산만 해도 벚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여긴 좀 늦게 피었는지, 만개한 벚꽃들이 저를 반겨줍니다. 게다가 길도 무슨 시골길처럼 이렇게 왕복 2차선 삼량진까지는 별다른 언덕도 없고.. 자전거로 달리기에는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덕분에랄까, 별로 힘들지 않더군요.

전날 비가 왔었는데, 북부지방에는 눈이 내렸다고 하더니 남부 지방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삼량진을 지나 밀양으로 가는 길에 있던 작은 언덕.


생각보다 빠른, 10시 10분에 밀양에 도착했습니다. 출발한지 딱 세시간만에요. 지도를 대강 볼때는 밀양에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덕분에 목표를 수정해 청도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합니다. 일단 옆에있는 파출소에서 길을 물어보고, 전도현 로드(..)를 따라 25번 국도로 진입합니다.

드디어 이정표에 대구가 보입니다. 대구까지 59km.. 당초 계획한 거리가 120km 정도였기 때문에 딱 반을 탔다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이때쯤 부터 슬슬 맞바람이 절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맞바람이란게 가만히 서 있으면 땅에 피어있는 잡초꽃이나 겨우 흔들 정도지만.. 이걸 정면으로 받으면서 시속 20km로 달리니 엄청나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자전거에는 평소와 달리 짐이 달려있고.. 죽을 맛에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문자를 보내 보지만, 답장들은 별 도움이 안 되거나, 아예 오질 않습니다. orz

5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니, 산이 하나 나옵니다. 낑낑 거리며 겨우 다 올라가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환상적인 곳이 하나 있더군요. 유호1리라는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큰 벚나무 한그루.. 사진도 찍을 겸 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합니다.

셀카도 한장..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네요.
근데 미묘하게 썩소를 짓고 있는것 같은데 orz

이윽고 언덕을 다 내려가니, 새마을 운동 발상지인 청도군 읍신도마을이 나옵니다. 저 깃발들이 다 몇개야 -_-;; 조금 더 가니 새마을 운동 기념관도 있더군요. 흠좀무.

아무튼 방금 넘어 온 언덕만 아니면 길도 비교적 평탄하고 참 좋은데 말이지요.. 맞바람이 너무 심합니다. 심지어는 무아지경의 상태로 달리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더군요. -_-;

뭐가 어찌 됐든, 바퀴는 계속 굴러 12시에 딱 맞게 청도에 도착, 주변에 있던 기사식당에서 점심으로 돼지찌게를 먹습니다. (5,000원) 그런데 식당에서 나오니 맑았던 하늘이 다시 흐려지네요. 길도 더 이상 시골길 같지 않고.. 하지만 맞바람이 멎었습니다! 다시 열심히 달립니다. -_-;

이때쯤 되니 솔직히 대구까지 갈 자신은 있습니다만, 내일 대전까지 갈 자신은 없었습니다. 오늘은 120km이지만 내일은 무려 150km을 타야하니.. 하지만 그렇다고 대구까지 가서 얼렁뚱땅 내려오기엔 자존심이 허락치 않고. 빨리 가서 일단 쉬고 봐야겠습니다.

오오 오오... 분지간지... 누가 대구가 분지 아니라고 했던가요. 대구까지 한 30km을 남겨놓고 이런 산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사진으로는 경사가 별로 안 심해보이는데.. 힘들었어요.. orz 내려올땐 추워서 벗어뒀던 바람막이를 다시 입어야 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업힐과 즐거운 다운힐이 끝나니 곧 도시가 나옵니다. 표지판에는 경산이라고 하네요. 그렇다는 것은...!!!!


☆★☆★축 대구입성☆★☆★


사실 몰랐는데 도로 표지판에서 자꾸 1번 고속국도를 가르키는 바람에 지도를 펴 봤더니 대구 바로밑에 경산이더군요. 우왕 나 다온거야? 그렇게 오후 2시 40분에 대구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대구에 들어서도 아직 목적지까지는 많이 남았죠. 다음날 일정등을 고려해 첫 날 머무르기로 한 곳은 대구역. 대구역까지 가열차게 사태질을 합니다. 대구가 분지라서 길이 평평할줄 알았는데, 안 그렇데요. 시밤.. ㅠㅠ

아무튼 결국 3시 40분에 대구역에 도착, 주변에 있는 찜질방(7,000원)에 짐을 푸는것으로 오늘의 주행이 끝납니다.

생각보다 꽤나 일찍 도착했기에 주변 피시방(2,500원)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인터넷도 좀 하다가 결국은 저녁(3,000원)을 대충 라면으로 때우고 일찍 잠에 듭니다.


1일차
주행거리 123.24km
주행시간 6시간 32분 4초 (안장에 앉아 있었던 시간)
평균속도 18.86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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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풀잎열매 2010/04/21 17:43 # 답글

    평균속도가 무시무시하군요;;; 언제나 걷는 것만 하다보니... 페이스 조절 잘 하셔서 즐겁게 여행하시길.
  • 미고자라드 2010/04/22 09:36 #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빨리 들어갔죠 ㅎㅎ
  • osolee 2010/04/22 03:27 # 답글

    정말 생각보다 속도가 빠르시네요 ㅎㅎ
    대구 입성 축하드려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안전하게 다녀오시길 :]
  • 미고자라드 2010/04/22 09:36 #

    결과적으로 너무 무리해서 탈이 났습니다 ㅠㅠ
  • kihyuni80 2010/04/22 08:01 # 답글

    부산-서울은 3일정도면 충분할 것 같고...라는 멘트가...
    평소에 운동을 하시는 모양입니다. ㅎㅎ

    무사히 여행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 미고자라드 2010/04/22 09:36 #

    네, 평소에도 자전거를 좀 타고 있습니다.
    이미 갔다 왔는걸요 ㅎㅎ
  • 마르땡 2010/11/04 23:58 # 답글

    군대를 낙방하다니 역시 너에겐 뭔가 하자가 있는게 분명해
  • 미고자라드 2010/11/15 16:46 #

    하하, 오해이십니다.
  • 장풍고수 2012/10/18 22:33 # 답글

    국방부조차 용인할 수 없는 덕후유전자...
    이거였군. 너의 블랙캣.
    당연히 검정이라고 생각했건만.. 레드캣인거냐...
  • 미고자라드 2012/10/19 00:51 #

    이때 뭔생각으로 빨갱이를 샀을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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